글또 10기 지원 - 내 삶의 지도
어떻게 살아왔는지 - 삶의 지도
-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 어떤 성격이고
- 어떤 사건으로 인해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
- 어린 시절부터의 생애를 돌이켜봄으로써 메타인지 향상
내 삶의 지도
MS-DOS 를 만지작 거리던 아이, 개발자가 되다
명절에 부모님을 뵙게 되면 어렸을 적 나의 무용담을 들려주시곤 한다. 근래 자주 듣는 레퍼토리는 서너살 때 MS-DOS를 만지작 거렸다는 이야기다. 대단한 행위를 했던 것은 아니고 아마 디렉토리를 오고가며 재미있는 응용프로그램을 실행할 줄 아는 정도였을 것이다.
지금은 3년차를 바라보는 웹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되어있다. 이제는 DOS 대신 Linux나 macOS같은 UNIX 계열 환경에서 작업을 한다. DOS든 UNIX든 CLI면서 개발자스럽다는 공통점으로 묶어볼 수가 있겠다. 그렇다면 나는 세 살 때 부터 개발자가 될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MS-DOS를 만지작거리던 아이는 어떻게 개발자가 되었을까? (이렇게라도 전개 해야만 하는 부족한 글솜씨를 용인해 주십시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어릴 적 부터 DOS를 만졌다고 깔아놓은 밑밥으로 인해 만약 나를 잠깐이라도 '컴퓨터 공학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쯤으로 인식했다면 사과 말씀을 드려야 될 것 같다. 어찌 저찌 돌고돌아 간신히 컴퓨터 공학과에 자리 할 수 있었지만, 불시착 이전이든 이후든 변함없이 노이즈가 조금 끼어있다.
학창시절에는 친구들과 농구하고 게임하는 것을 좋아했다. 공부를 하면 어떤 이득이 있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 했다. 아니,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을 정도로 별 생각 없이 태평하게 지냈던 것 같다. 부모님께서도 '건강하게만 자라다오'와 같은 스탠스로 학업에 부진한 나를 크게 질책하지 않으셨다.
후폭풍은 성인이 되고 나서 밀려왔다. 무념무상으로도 지낼 수 있었던 좋은 시절은 가버렸다.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많이 고민하고 스트레스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별 생각 없이 지내왔던 지난날을 후회하게 되었다. 후술하겠지만 이 때 형성된 부정적인 앙금은 지금의 나를 움직이는 주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많은 부분이 생략되었지만 큰 틀에서 훑어보면 나의 생애는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첫 번째 회사를 거쳐서 지금 있는 두 번째 회사에 개발자로 정착한 것으로 정리를 마무리 할 수 있다. 앞으로는 생애주기와 상관 없이 '개발자'라는 직업, 그리고 '코딩'과 '글쓰기'라는 행위에 집중해서 나에 대해 탐구해보려 한다.
클리프 블레진스키를 보며 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보다
개발자라는 직업에 처음 눈독 들인 계기는 클리프 블레진스키라는 게임 개발자의 게임 시연 영상이었다. 영상에서 클리프는 전기톱으로 천막을 찢으면서 요란하게 등장한다. 물론 이 부분도 충분히 인상 깊었지만, 자신의 창작물을 한껏 들뜬 표정 그리고 확신에 찬 태도로 청중들에게 소개하는 장면이 오래도록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 개발자는 즐거운 직업이구나. 이보다 나를 사로잡은 건 청중들의 열광적인 반응이었다. 아주 멋진 것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 앞에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 만큼 가슴 설레는 일이 또 있을까?
훗날 접한 '노동의 소외'라는 이론은 직업 선택에 확신을 더했다. 산업혁명 이후 분업화와 기계화가 가속 되면서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노동으로부터 성취와 보람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이를테면 산업혁명 이전의 신발장인은 신발 제작 과정에 A부터 Z까지 관여하면서 노동 과정에서 얻는 기쁨과 이후의 판매 수익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이 만들어낸 상품에 대한 자부심까지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것들이 녹록치 않다. 신발 제작이 컨베이어 벨트에 의해 효율적으로 처리되는 대신에 기쁨, 수익, 자부심 모두 잃었다.
공장 생산직을 예시로 들었지만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다른 직종들이 여전히 많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개발자는? 비교적 괜찮은 여건의 직업으로 다가왔다. 내 손으로 무언갈 만들고 그에 대한 성취와 보람을 여과없이 느낄 수 있는 것. 나는 직업 선택에 있어 노동에서 얻을 수 있는 성취와 보람을 양보 불가능한 조건으로 여겼고 이 생각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공기업에 입사한 친누나는 '저녁이 있는 삶과 노후 보장'을 주된 이유로 내게도 공기업을 권했지만 아마도 나는 그런것들에 만족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코딩과 작문이 갖는 의의
처음에는 글쓰기에 대해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대학 시절 교양 필수 과목에 작문이 있어서 강제로 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너무 재미있고 꼭 맞았다. 두 개의 작문 수업에서 에이쁠을 받아내고 수업 외적으로도 글쓰기 책들을 찾아 읽고 저자의 오프라인 강연도 참여할 만큼 열정적으로 임했다. 이전에는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급하게 말로 쏟아내는 것 밖에 할 줄 몰랐다면 작문을 접한 이후에는 차분히 정리한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여 정갈하게 전달할 수도 있게 되었다.
작문을 접한 뒤에는 개발자 출신이면서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들의 이력에도 눈길이 갔다. 현대 SF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켄 리우와 테드 창이라는 작가는 놀랍게도 중국계 미국인이면서, 개발자 출신의 SF 작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러한 우연의 일치도 두 사람의 작품을 감명깊게 읽고, 또 마침 코딩과 작문을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단순한 우연으로 여겨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코딩과 작문의 연관성에 조금 집착하는 편이다. 켄 리우는 프로그래머와 작가가 '현대 기호, 즉 프로그래밍 언어와 말을 활용하여 의미있는 것을 쌓아 올리는 직업' 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 만으로는 썩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내 생각에 작문과 코딩은 깊게 생각하고 생각한 바를 명료하게 표현하길 종용하는 행위다. 나는 이런 것들을 동경한다.
깊게 생각하고 잘 표현하는 것에 대한 동경은 별 생각 없이 살아온 지난날에 대한 후회이자 결핍이기도 하다. 나를 움직이는 주된 동력은 결핍 해소를 위한 몸부림 들이다.
주니어 개발자라는 타이틀을 얻어낸 후. 기대만큼 성장했는가?
첫 직장에서는 성장을 갈구하며 악착같이 지냈다. 주어진 근무 환경이 그렇게 좋지는 못했다. 그래서 퇴근 후에도 개인 시간을 많이 할애하면서 모르는 부분을 채워나갔다. 현 직장에서는 좋은 동료들을 만났고 현실에 안주하며 게을리 지냈다.
그 결과, 곧 3년차를 바라보는 현 시점에서 드는 생각은.. 큰일났다! 내가 벌써 3년차?
게을러서가 아니야. 시스템이 부재해서야
개발자로 평탄한 커리어를 오랫동안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좀 더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 여기서 체계적인 시스템이란 좋은 습관을 말한다. 자기 분야에서 괄목할 성과를 이룬 많은 사람들은 고민하고 걱정할 시간에 '그냥 한다'고 하는데 나는 이런 부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래서 고민 없이 '기계처럼' 행동할 수 있는 방안으로 시스템을 떠올렸다. 지금까지는 시스템 없이도 그때그때 수습하며 무마해올 수 있었지만 이게 지속 가능한 방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경력이 쌓이면서 더 많은 전문성이 요구되기 전에 좀 더 효율적으로 성장할 방법을 강구해내야만 한다.
사실 이렇게 발등에 불 떨어진 것 같은 상황을 마주하게 된 건 나의 부족함, 게으름 탓이 맞다. 그럼에도 앞으로는 시스템을 탓 할 생각이다. 게으름을 탓 하는 건 자기 자신을 갉아먹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다.
좋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몇몇 노력을 개인적으로 기울이고 있다. 글또에 지원한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글또 활동에 기대하는 점
주된 목적은 꾸준하게 글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작문을 처음 접했을 때 부터 이 습관을 들이기 위해 나름 많은 노력을 쏟았다. 더 나은 작문 환경을 위해 여러 번 블로그를 옮기고, 작문 스터디를 꾸려서 활동해보고, 제텔카스텐이라는 방식을 적용해봤다. 그러나 수 개월 반짝 집중했다가 다시 느슨해지는 상황의 반복이었다. 누군가는 이 정도도 충분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좀 더 일상적으로 글을 쓰는 지경에 이르고 싶다. 내 입장에서 글 쓰는 습관에는 손실이 없다.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고 학습에도 유용하다. 따라서 6개월 동안 글또 활동에 몰입하면서 양질의 글을 많이 찍어내보고 싶다. 이러한 경험은 글또 활동 이후의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또 다른 목적은 같은 직종에 종사하면서 글쓰기라는 취향까지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과 교류해보고 싶다는 점이다. INFP로서 타인과 교류하는 건 늘 어렵고 피곤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항상 좋은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있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적당한 간격에서 좋은 자극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관계 말이다. 이렇게 주절주절 늘어놓은 게 굉장히 까다롭다는 인상을 남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나라는 인간이니 이런 나라도 괜찮은 사람이 있다면 친분을 쌓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