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비트짜리 오류
켄 리우의 SF 단편집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에 수록된 이야기다. Single-Bit Error라는 영문명을 지닌 이 단편의 제목은 지극히 컴퓨터 공학적이다. 작중에서 '이름'을 프로그래밍 언어의 '변수' 개념과 연관지어 바라보는 시선 또한 그렇다. 변수가 메모리 공간에 있는 데이터를 가리키듯, 어떤 것에 대한 이름이 그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공학적인 내용은 부가적이다. 주된 내용은 신앙심에 관한 것이다. Single-Bit Error라는 공학적 개념이 신앙심에 대한 관념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경이롭다.
이름은 단지 기억을 가리키는 약칭에 지나지 않았기에, 어린 시절의 타일러는 우리가 살면서 하나하나의 이름을 두 번 정의한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했다. 처음에는 앞날에 거는 기대로서, 나중에는 지난날의 요약으로서.
타일러는 은행에서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래머로 일한다. 타일러는 홀리 플레이스라는 가게에서 리디아를 처음 만났고, 이내 곧 사랑에 빠졌다.
타일러는 리디아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그는 자신이 홀딱 반한 여성이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었고, 그녀가 모은 이름들은 어떤것 인지도 알고 싶었다.
리디아의 삶은 천사 강림을 경험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 천사 암브리엘이 뿜어낸 빛은 그간의 외롭고 평범한 삶 속 초라하고 혼란스럽고 절망적인 모순들을 환히 밝혀주었다. 신을 향한 지극한 사랑으로 충만해진 리디아의 얼굴에선 근심이나 두려움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신을 사랑하게 됨으로써 마침내 그녀는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타일러는 리디아와 사랑에 빠졌다. 이는 신의 빛이, 심지어 그에게 닿기 전에 리디아를 거치느라 굴절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눈부신 황홀경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타일러는 리디아가 1비트짜리 오류로 인해 죽었다고 결론 지었다. 타일러와 리디아가 탑승중이던 자동차의 자율 주행 기능이 기적과도 같은 말썽을 일으킨 것이다. 이 차는 정교한 수학적 논증으로 무결성을 보장받은, 무적과도 같은 타입 시스템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비트의 세계에서 이는 오류가 발생할 수 없음을 단언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러나, 2000년 전 초신성이 되어 폭발한 별의 잔해로부터 쏟아져 나온 양성자 한 개가 타일러와 리디아가 타고 있던 자동차에 부딪히는 일이 발생했다. 집적 회로의 전자 일부가 튕겨나갔고, 1을 표시하던 비트가 0으로 바뀌었다. 이 미세한 변화는 기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리디아가 살아 있는 동안에 타일러는 자신의 신앙심을 유보할 수 있었다. 그녀가 죽어버린 지금에 와서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타일러로서는 신앙이 결여된 상태를 유지한다면 리디아의 기쁨의 환상이었다고 확신하는 셈이었고, 이는 곧 그녀의 기억에서 핵심에 해당하는 부분을 없애 버리는 셈이었다. 그러나 천국과 신이 있다고 믿으려면 그는 머릿속에서 환상과 현실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려야 했고, 환각처럼 보이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리디아가 살아 있는 동안 그는 그녀를 사랑하는 한은 그 결정을 나중으로 미룰 수 있었지만, 그녀의 죽음은 곧 그 결정을 내릴 때가 됐다는 의미였다.
신에 대한 접점이라고는 오직 리디아 뿐이였던 타일러가 신의 존재를 선뜻 믿기란 쉽지가 않았다. 더욱이 타일러는 환상과 현실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십수년간 자신을 괴롭혀온, 어릴적 할머니에게 큰 상처를 안겨 주었던 기억이 사실은 할머니에 대한 죄책감에서 비롯한 왜곡된 기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타일러는 우리 뇌가 얼마나 오류에 취약하고 가짜로 점철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타일러는 자신의 가짜 기억에서 하나의 오류를 발견하고 그 덕분에 현실과 환상의 구분법을 터득한 것이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야말로 자신이 어른이 된 순간이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타일러는 우리의 뇌가 마치 타입 시스템처럼 한없이 완벽하면서도 한없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서 합리주의자가 자기 안에 신앙을 유발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뇌에 1비트짜리 오류를 유발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타일러는 곰곰이 추론했다. 만약 회로 기판에서 일어난 단 1비트의 오류가 수학적으로 완벽한 프로그래밍 언어의 타입 시스템을 망가뜨린다면, 뇌에서 일어난 1비트짜리 오류는 간호사와 천사를 구분하는 체계를 망가뜨릴 수도 있지 않을까?
타일러는 생각했다. 추론을 통해 신앙에 이르고자 할 때 필요한 것은, 단 1비트짜리 오류라고.
타일러는 1비트짜리 오류를 유발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의 몸을 약하게 만드는 방식을 택한다. 사막 한복판까지 차를 몰고 들어간 후,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쓰러지기 직전에 리디아의 환청을 들어볼 순 있었지만 천사 강림은 경험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마약, 명상, 전기 충격 등을 시도해보지만 신에 대한 믿음을 자아내진 못했다.
타일러는 리디아에게 변수와 단 1비트의 에러와 메모리의 타입 시스템에 관하여 모조리 얘기해 주고 싶었다. 그녀가 경험한 것들을 자신도 경험하고 이로써 그녀와 같은 곳에 있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도 설명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몹시도 허기지고 목이 탔고, 어지럼증도 느꼈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이것뿐이었다. "보고 싶어."
오랜 기다림 이후, 타일러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천사 강림을 경험한다. 타일러 또한 리디아가 그랬듯 신을 향한 충만한 사랑에 몸 둘 바를 모르게 된다. 마침내 리디아와 같은 경험을 하고 같은 선상에 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감정을 증폭시킨다. 이렇게 타입시스템이 무너져 내리기 직전에, 타일러의 합리주의적 면모가 드러났다. 천사 강림이 발생하기 직전에 올려다 본 시리우스의 불빛 때문에 눈이 착각을 일으킨 건 아닐까? 아니면 리디아를 죽음으로 내 몰았던 기적이 또 한번 발생한 건 아닐까? 양성자가 타일러의 눈 속으로 들어와 뇌 아래쪽의 시상 하부를 거치면서 1비트짜리 오류를 유발한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자 타일러 눈 앞의 천사는 사라지고 없었다.
곧이어 타일러는 자신이 저주받았음을 깨달았다. 앞으로 남은 평생 동안 타일러는 직전의 황홀경을 기억할 운명이었다. 그러면서도 떨쳐낼 수 없는 자신의 합리주의적인 면모로 인하여 리디아처럼 아무런 근심이없고 신을 향한 충만함으로 가득한 삶을 결코 살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지옥은 악마와 불구덩이로 들끓어서 지옥인 것이 아니다. 지옥은 신이 부재하기에 지옥인 것이다.(Hell is the absence of God)
타일러는 숨을 거두는 날까지 그렇게 살아갔다. 가끔은 행복을 누리기도 하면서.
- 작가는 이 이야기가 테드 창의
<지옥은 신의 부재>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도 인상깊게 본 적이 있는 작품이라서, 정리하고 비교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즐거울 듯. - 타일러와 라디아는 같은 현상을 경험했음에도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천사 강림을 통해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음에도 타일러의 경우에는 그로인해 오히려 더 불행해졌다. 이쯤되면 신의 실존 유무는 중요하지가 않아 보인다. 그것보단 어떻게 믿는가에 달린 것 같다. 신에 대한 믿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할지 따위다. 의미의 최종 편집권은 나에게 있다 ^65f530
"프로그래머들은 사실 숫자에 목숨을 거는 부류가 아니야." 타일러가 말했다. "우린 말을 중요하게 여기는 족속이야. 숫자에 목숨을 거는 부류는 하드웨어 쪽에서 일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