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세상을 버티게 하는 유머의 힘, 〈어 퍼펙트 데이〉
영화 <어 퍼펙트 데이>에는 힘든 상황을 유머로 버텨나가는 인간상이 나오는데 아주 실용적이고 쿨내나는 어른의 태도 같은 것에 감명받아 이렇게 글로 정리해 보게 되었다.

유머로 무장한 멋진 어른
보스니아 내전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유머로 시작한다. 첫 번째 씬은 국제구호단체 소속의 팀이 마을의 식수 문제를 해결하고자 우물에 빠진 시체를 끌어올리는 장면이다. 시체를 묶은 밧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미션에 실패했고, 팀장인 맘브루는 살이 찐 시체를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팀원이 형에게 들은 의학적 지식을 뽐내며 부신이라는 증상 때문에 몸에서 지방을 분해하지 못한 탓일거라고 말한다. "형이 의사였나?"고 묻는 팀장의 질문에 팀원은 "아뇨 그냥 뚱보예요"라는 우스꽝스런 말을 내뱉는다. 그다음 쇼트는 자기들끼리 농담을 주고받는 마을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러고는 이 지방 사람들은 '요거트와 유머로 유명'하고 '항상 웃는' 사람들이라는 정보를 던져준다. 이렇듯 영화는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팀은 꼬박 하루 동안 밧줄을 찾으며 여러 사건에 휘말린다. 그런 와중에 드러나는 맘브루의 팀원을 다루는 리더십도 매력적이지만 그것보다는 본인이 의도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을 때 감정을 절제하고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이 훨씬 인상적이었다. 'What a perfect day'는 엉망진창이었던 하루에 대한 절제가 담긴 자조와 해학이다.
그들을 방해하는 세력은 아이러니하게도 UN이었다. UN은 절차와 규율만 중시하면서 책임회피에 급급해 눈 앞의 자그마한 문제도 외면하고 나아가 방해하기에 이른다. 영화 막바지에 맘브루와 팀원들이 힘들게 구해온 밧줄로 시체를 다시 묶어서 들어올리는 순간 UN군이 나타나서는 싹둑 밧줄을 잘라낸다. 관할권을 지역 당국에 넘겼으니 더이상 개입하는 건 불법이라면서. 원칙이란 게 있고 절차를 준수해야한다면서. (United Nothing!!) 이때 맘브루는 부조리한 방해물 앞에서 잠시간 분을 삭이고 금세 물러선다. 언짢음을 유머로 승화하여 날려버리고 다음 할 일을 찾아 나선다. 정말 멋진 어른이 아닌가?
이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지만 맘브루의 행동은 일관적이다. 무력함 혹은 허탈함 앞에서 소피라는 신입 팀원처럼 부조리한 시스템에 구태여 저항하며 힘을빼지 않았다. 그보다는 빠르게 순응하고 눈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는 쪽을 택했다. 이러한 행동의 원동력은 물론 유머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기조에는 실존주의적 태도가 깔려있다.
부조리와 반항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명확성을 요구하는 인간의 이성과 침묵하는 세계 사이의 모순을 부조리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이 모순으로부터 육체적 자살로 도망치려 하거나, 철학적 혹은 신앙적 논리로 모순을 해소하거나 부정하려는 시도들이 모두 회피라고 보았다. 따라서 카뮈는 모순을 끌어안고 하루하루를 반항하며 초연하게 살아가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말한다.
카뮈가 말하는 반항이란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라는 말을 부정하는 것이다. 반항이란 사형수로 태어났지만 그럼에도 매순간을 열심히 살아내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서도 희망을 내려놓아야 한다. 언젠가 모순이 해소되고 어떠한 형태로 구원 받아서 삶에 대한 영원한 투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리란 희망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행복이 시작된다.
내게 맘브루는 이 내용들을 체화하고 실천하고 있는 사람 같았다.
시지프의 형벌은 시지프가 더 나은 어떤 것을 희망하거나 꿈꿀 때만 끔찍할 뿐이다. 시지프와 오이디푸스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희망을 버렸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운명을 끔찍하게 여기지 않고 마침내 유일한 참된 행복을 발견한다. <시지프 신화>
만약 지금의 운명보다 더 바람직한 대안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우리 운명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또 그래야만 우리가 아무 조건 없이 인생을 받아들이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인생을 충분히 향유할 수 있다. <시지프 신화>
내가 이 세계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오늘 아침, 이 세계를 초라한 모습으로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밀란 쿤데라, <농담>
번외 1) 확신이 가득찬 시대의 농담
밀란 쿤데라는 농담에서 공산주의 시대에 공산주의를 모욕하는 농담 한 마디 했다가 인생이 망가진 청년 루드비크의 이야기를 다룬다. 루드비크의 연인인 마르게타는 유머와는 도통 어울리지 않고 시대정신과 꼭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마르게타가 당 연수원에 가 있는 동안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편지를 보내자 루드비크는 그녀가 본인 없이도 충만하다는 사실에 질투한다. 그래서 그녀의 관심을 끌 목적으로 그녀가 추종하는 공산주의를 내리깎는 식의 농담을 적어 회신한다. 여기에는 그 어떤 정치적 목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루드비크는 당에서 축출당해 폐광살이를 하게 된다. 당에 대한 광신도적 충성심으로 가득 찬 이들에게 '장난이었다'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신념에 무척 진지했고, 따라서 우습게 여기는 사람을 엄벌하지 않는 건 신념에 대한 모독이었다.
내가 이야기를 하나 해 줄게요. 제네바에서 칼뱅의 말이 곧 법이 되던 때에 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어쩌면 당신과 비슷하게 똑똑하고 농담도 잘하는 친구였어요. 그런데 하루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서에 대한 조롱으로 빼곡히 차 있는 그의 수첩이 발견되었지요. 그게 어디 화를 낼 만한 일인가요? 당신을 빼닮은 그 청년도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어찌되었든 그는 아무것도 나쁜 짓은 하지 않았고 다만 농담을 한 것뿐인걸요. (...) 그는 처형되었지요.
역사적으로 계급사회에서 농담은 통용되지 않았다. 이런것들은 이념의 시대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권위와 농담은 항상 물과 기름같은 관계다.
번외 2) 꼰대가 되지 않기위한 방법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권위를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젊은 사람들 앞에서 본인의 경험이나 나이, 직책, 자산 따위로 주름잡는 것은 권위를 내세우는 행위다. 자신을 언제든지 희화화할 수 있어야 하며, 상대방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
내가 아는 대기업 임원 한 분은 은퇴를 앞두고 미리 모욕당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직함을 내려놓는 순간 그가 받아왔던 대접들이 일제히 사라질 테니까.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은퇴와 동시에 아무도 당신의 재미없는 아재 개그에 웃어주지 않을 것이다. 누가 당신에게 섭섭한 소리를 했다고 느닷없이 울지 않도록 훈련해야 한다. 김영민,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유머러스해질 필요가 있다
진중함을 덜어내고 그 빈 공간을 가벼움으로 채워넣고 싶다. 누군가를 웃기기위한 목적도 물론 좋지만 그것보다는 삶을 버텨내기 위한 수단으로써, 그리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가 더 크다.
언젠가 회사일로 잔뜩 스트레스 받았을 때 마션의 낙관주의 주인공인 마크 와트니를 떠올린 적이 있다. 우주에서 홀로 조난당해도 버텨낼 수 있는 긍정적 마인드는 연구 가치가 분명하다고, 어릴적 깔깔대며 웃어넘기기만 했던 그 캐릭터가 다시 보이게 된 계기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마크 와트니보다 맘브루의 덕을 먼저 보게 되었구나 싶다. 어쨌든 나에게는 아직 패가 한 장 더 남아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