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huck

새로운 가난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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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충격적인 통계자료를 보았다. ‘기회가 되면 내 것을 나눠 타인을 도울 것인가?’ 라는 물음에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청년 남성들의 대답이 유난히 돋보이는 그래프였다. 비교적 비슷한 환경을 겪고 자란 청년 여성들과 견주었을 때 비관적이고 극단적인 성향을 띠는 양상이 실망스러웠고, ‘있는 사람이 더 한’ 면모를 보이는 모습에 낙담했다.

분배에 대해서는 각자가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우하향을 그리는 이 그래프의 곡선이 좀 더 위쪽으로 쏠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앞으로 소개할 책에 구미가 당길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단순히 ‘재밌다’는 정도를 넘어 생각의 지평을 넓혀준, 꽁꽁 얼어붙은 머릿속 바다를 시원하게 깨뜨려버리는 도끼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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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center; font-style:italic; color:#808080; font-size:80%"> 다행히도 이 통계는 왜곡된 것이라는 <a href="https://www.chosun.com/economy/economy_general/2021/06/29/45QGN6LND5FAZDCFSG6LDBHLGI/" title="KBS ‘나쁜 이대남’ 그래프에 학자들이 분노하는 이유">주장</a> 에 힘이 더 쏠리고 있다. </p>

이 책은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 상황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내포하고 있던 문제들이 부각되는 이 시점에서 ‘21세기 자본주의와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운명’을 고찰한다. 우리 사회는 어떤 문제에 처해 있는가?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공지능은 우리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할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뉘어 소득과 부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플랫폼 노동으로 대변되는 그나마 몇 없는 일자리는 삶을 고단하고 빈곤한게 한다. 게다가 신자유주의 이념을 등에 업은 21세기 자본주의는 복지를 걷어차 버리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며 불평등을 가중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노동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고 게으름은 악이다’라는 생산력이 부족했던 과거에나 통용되는 노동윤리를 버리고, 인간이 노동을 통해서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는 편견을 버리면, 인공지능에게 우리의 일자리를 흔쾌히 내줄 수 있게 된다. ‘로봇세’와 ‘구글세’를 걷어서는 ‘기본소득’이나 ‘기초자본’과 같이 어떻게 하면 균등하게 배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 된다. 노동을 버리고 불로소득을 취하는 동안 우리는 예술 활동이나 정치에 참여하며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노닐면 된다. 경제가 돌아가게끔 적당히 소비도 해주면서 말이다. 본래 노동은 노예가 도맡았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서로에게 다가가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와 노동윤리 그리고 능력주의는 능력 없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도덕적 비난을 수용할 뿐만 아니라 종용하기까지 한다. 소비사회에서 가난하고 능력 없는 사람들은 국가와 자본의 눈 밖에 난,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19는 이들의 고립을 강화한다. 이런 마당에, 저자는 ‘비상구를 찾아 나가는 길에 어떤 이유로든 뒤에 남겨진 자들은 더 이상 동료 시민들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게 된다’면서 우리 모두가 합심해서 위기의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위기에 뒤로 남겨지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사실 이 책의 진가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부분이 아닌, 우리 사회가 형성된 과정과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들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복지국가를 무너뜨렸고, 대중들은 왜 복지국가가 무너지는 광경을 묵인했으며, 포스트민주주의가 어떻게 불평등을 용인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은 참으로 흥미롭다. 노동윤리가 가난한 자들을 우리 사회에서 배제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분석과 능력주의의 허점을 낱낱이 밝혀내는 마이클 영의 분석은 모피어스가 건네는 빨간 약에 비견할만한 충격과 깨달음을 안긴다.

진짜 재밌는 이 책의 내용들을 잘 정리해보고자 몇 번이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지만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역량 부족이다. 다음번에 읽을 책은 잘 구상해서 정리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