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를 읽고
한강 작가와 <소년이 온다>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다다음 날 아침 출근길, 대형 온라인 서점에서는 벌써부터 한강 작가를 집중 조명 하고 있었다. 작가의 책이 매진되어서 배송이 지연될 것이라는 공지도 작성되어 있었다. 나는 아랑곳 않고 <소년이 온다>를 주문했다. 배송은 평소보다 고작 2~3일 늦었다. 책이 품절된 속도 못지 않게 빠르게 증쇄된 덕분이다. 그렇게 받아본 책의 첫 장, 작가를 소개하는 글 맨 마지막에 적혀있는 문구를 보고 미소가 지어졌다. '202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채식주의자>와 <흰>에서 느낀 한강 작가의 글은 정말 강렬했다. 불쾌함을 살짝 빗겨간 경외감 같은 감정이 주를 이루었던 것 같다. 불쾌함은 어두운 이야기 소재와 전개 과정에서 묘사되는 생생한 폭력에서 기인한 것이었고, 경외감은 그 폭력이 마냥 어두운 목적으로 묘사된 것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에서 비롯되었다. 이렇게 느껴지는 경외감이 바로 한강 작가의 위대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읽은 <소년이 온다> 역시 강렬했다. 가슴 아픈 역사를 이야기로 엮어와서 '잊으면 안 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참혹했던 실상을 너무도 정확한 단어로 표현하는 바람에 고통이 페이지를 뚫고 전해진달까. 더욱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상무관, 도청, 분수대, 수피아여고, 상무대 같은 지명들이 내게는 익숙한 곳들이어서 더욱 와 닿았다. 내가 그들과 같은 공간을 점유했었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 시간선만 달랐을 뿐이다.
이렇게 (현실이 그러했기에) 폭력이 짙은 이야기 속에서도 감동적인 부분이나 작가의 따스한 마음씨가 드러나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게 참 좋았다. 남매 간의 우애를 회상하는 장면이라던가 동호 어머니가 동호에게 편지를 쓴 장면이라던가. 두 장면 모두 일상 속 소박한 행복을 포착한 지점이었는데, 비극적인 현실과 대비되면서 감정을 고조시켰다. 그 당시에는 왜 그리도 동생 뒷바라지하며 고생하는 누나들이 많았는지...(훌쩍)
그날밤 난 홑이불을 배에 감고 누워 일찍 잠든 척하고 있었지. 언제나처럼 야근을 하고 들어온 누나가, 언제나처럼 세면장에 상을 펴고 식은 밥을 찬물에 말아 먹는 소리가 들렸어. 씻고 이를 닦은 누나가 발뒤꿈치를 들고 들어와 창문으로 다가가는 옆모습을, 난 어둠속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봤어. 모기향이 잘 타고 있는지 확인하려던 누나는, 내가 창틀에 세워놓은 칠판지우개를 발견하고 웃었어. 한숨처럼 낮게 한번, 잠시 뒤 소리 내어 한번 더. 누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헝겊 지우개를 한번 들었다가 제자리에 놓았지. 언제나처럼 나에게서 멀리 이불을 펴고 누웠다가, 가만가만 무릎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왔지. 잠든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있던 나는 정말로 눈을 꼭 감았지. 누나가 내 이마를 한번, 뺨을 한번 쓰다듬곤 이부자리로 돌아갔어. 좀 전에 들렸던 웃음 소리가 어둠속에서 다시 들렸어. 한숨처럼 낮게 한번, 잠시 뒤 소리 내어 한번 더.
- <소년이 온다> 中
역사적 트라우마와 <박하사탕>
Prize motivation: “for her intense poetic prose that confronts historical traumas and exposes the fragility of human life”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 https://www.nobelprize.org/prizes/literature/2024/han/facts/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를 설명하는 글에 '역사적 트라우마'라는 키워드가 등장한다. 역사적 트라우마란 특정한 역사적 시점에서 개인과 집단이 경험한 상실 또는 파괴적 체험을 뜻한다. 즉, 한강 작가가 <소년이 온다>를 통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광주 시민들의 트라우마를 직시한 부분을 노벨 측에서 높이 샀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역사적 트라우마는 5.18 당시 진압군 측에 섰던 일부 군인 개인에게도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5.18 당시 진압군 측에 섰던 군인들 중 일부도 역사적 트라우마의 희생양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이러한 부분이 잘 드러난다. 주인공인 영호는 군 생활중 계엄군으로 강제동원되어 의도치 않은 살상을 저지르게 된다. 이 사건은 영호를 갉아먹는 트라우마가 되어서 끝내 자살에 이르게 된다. <박하사탕>은 영호 같은 군인들이 '가해자로 위장된 피해자'라고 말한다. 가해자는 국가 또는 전두환이었다.
인간이 저지르는 악행의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해 질 때가 있다. 전두환의 행적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고,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단행한 나치와 끔찍한 생체 실험을 저지른 일본 731 부대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이런 의문이 든다. 이런 의문을 상기시키는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 <소년이 온다> 中
